흔한 K 마케터의 현타, “나만 이래?”

누구에게나 직장 생활의 고비가 있다. 합격 통보를 받고 뛸 듯이 기뻤던 순간은 희미한 기억으로 남고, ‘그만둘까?’ 하는 생각과 한숨이 하루에 열두 번씩 드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느 직군이든 겪는 일이라지만, 이제는 일상의 업무가 능숙해진 2~3년 차 마케터라면 더 그렇다. 이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마케팅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진로 고민까지 겹친다.

지금은 스노우볼의 마케팅 총괄을 맡은 H도 몇 해 전까지 그랬다. 그러나 고민의 순간, 한 번만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스노우볼에 합류한 지 3년, 이제는 13명의 마케터를 이끄는 그는 “마케터로서 직무 만족도가 높다”고 말한다. 주니어를 지나 시니어로 가는 길에 꼭 한 번씩은 겪는다는 마케터의 회의감.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9년 차 마케터 H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케팅 3년 차, 그 시기가 찾아왔다

초창기 데이원컴퍼니가 패스트캠퍼스라는 이름으로 오프라인 직무 교육에 집중하고 있던 시절 마케터로 입사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작은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일의 성과와는 별개로 스스로는 급격히 소진되고 있다고 느꼈다.

지겹다고 생각했다. 같은 상품을 같은 방법으로 광고만 돌리다가 나의 커리어가 끝나버리지는 않을지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퇴사했고, 업계를 바꿔 이직했다. 이번엔 다른 이유로 ‘현타’가 왔다. 내가 홍보하고 있는 상품의 효능감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았다. 스스로 ‘좋은 상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판매 촉진을 위한 활동을 하는 내 모습이 달갑지 않았다. 

“상품을 골라가며 의욕을 느끼고 잃기도 하는 모습이 과연 좋은 마케터의 자질일까? 나는 마케팅을 앞으로 계속할 수 있을까? 직업을 바꿔야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 눈에 좋아 보이지 않는 상품을 훌륭하다고 홍보하는 것이 양심에 내키지 않아 다니던 직장은 일단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해결책은 명확히 보이지 않아도, 한가지는 분명히 깨달았다. 어떤 산업에서 어떤 직종으로 일하든 ‘내가 하는 비즈니스가 사람과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가’는 직업과 일터를 선택하는 데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고민의 순간 찾아온 기회

“타이밍이 아주 좋았어요.”

때마침 적절한 시기에, 패스트캠퍼스 시절 사수였던 김지훈 스노우볼 대표로부터 다시 함께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패스트캠퍼스(현 데이원컴퍼니)의 한 사업부였던 스노우볼이 사내 독립회사로 승격하여 첫 출발을 한다고 했다.

김지훈에게는 양질의 취업 교육 콘텐츠로 시장이 해결하지 못한 청년 취업난을 해결해보겠다는 당찬 포부가 있었다. 고객이 상품을 결제하면서 집계되는 매출만으로 성과 측정이 마무리되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도 H가 옛 일터로 돌아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노우볼의 사업 방향성에 동의가 많이 되었어요. 지훈님이 추구하는 스노우볼의 교육은 수강생이 취업할 때까지 끝까지 함께한다는 모토가 있거든요. 강의를 샀으니까 끝이 아니라, 수강생이 몇 달간의 취업 교육 레이스를 완주하고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되는 것까지가 저희 미션이에요. 이런 상품이라면 제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을 것 같았죠.”

9년 차 마케터의 직무 만족도는?

H는 제로베이스 마케터로서 직무 만족도가 꽤 높다고 평했다.

이제 막 독립한 신생 조직은 갖추어진 것도 정리된 것도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혼란을 기회로 활용했고 이는 그동안 마케터로 가져왔던 회의감을 씻어버리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표본으로 삼을 레퍼런스도 기존의 레거시도 없기에 더 나은 마케팅을 위해 끊임없이 많은 것을 시도했다. 90퍼센트는 실패하지만 10번 중 성공할 1번을 위해 방법을 찾을 때까지 다시 해봤다. 성공한 10퍼센트로 추후 업무 방향의 기준을 세웠다. 시장의 신규 브랜드인 제로베이스를 되도록 널리 알리기 위해 직군의 경계를 깨고 모든 방향으로 문제에 접근하기도 했다. 

“온라인 마케팅으로는 쉽게 타깃 고객에게 광고가 도달한다는 이점이 있지만, 취업 교육 시장이 있는지도 모르는 고객에게는 우리 이름을 우연히 알릴 기회도 없거든요. 그래서 당장 매출과 직결되지 않더라도, 오프라인에서 커피차 이벤트를 열거나 취업을 주제로 신춘문예를 여는 프로모션도 해요. 교육이 잘 돼야 그 결과를 바탕으로 또 좋은 마케팅이 되는 거니까, 기획자처럼 교육과정에 대한 아이디어를 낼 때도 있죠.”

제로베이스(스노우볼이 운영하는 취업 교육 서비스)의 프론트엔드 스쿨 상세페이지의 일부

스노우볼이 추구하는 취업 교육의 특성상, 허위 과장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와도 거리가 멀어졌다.

“일반 소비재 마케팅을 하다 보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매출을 위해서 자극적인 말들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스노우볼에서는 이런 부분에서 느낄 스트레스가 없어요. 왜냐하면 저희는 지금까지 스노우볼을 거쳐 간 수강생의 취업 결과로 마케팅을 해야 하니까, 말을 지어낼 수도 없고 교육의 효과를 과장할 수도 없어요. 오히려 저희 교육 과정 졸업 후 6개월 이내에 취업을 못 하면 100% 환불해준다고 이야기하죠. 우리 교육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말인데, 이런 부분은 저뿐만이 아니라 스노우볼의 여러 마케터들이 만족하는 지점이에요.”

(별 반개는 워낙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뺐다고 말했다.)

마케팅팀장의 커리어 NEXT?

팀장의 커리어 성장에는 그의 직업이 정의하는 영역 이상이 필요하다. 스노우볼의 마케팅을 총괄하는 H의 커리어도 그렇다. 커리어에 다음 목표가 있냐는 질문에 그가 답했다.

H팀장, 데이원컴퍼니 스노우볼CIC 마케팅 Lead

“회사의 성장에 따라 제 커리어도 평가받을 거예요. 제가 팀장으로 스노우볼을 잘 성장시켰고 이 회사가 잘돼야 제 커리어도 성공하는 거죠. 저는 한 부서를 책임지고 있는데 나는 열심히 잘했으나, 회사가 망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앞으로 마케터를 계속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스노우볼이 잘 돼야 합니다. 회사를 잘 성장시키는 게 지금 제 목표예요.” 

마케팅 씬에서 살아남았고, 큰 책임을 지는 리더가 되었다고 해서 마케터로서 고뇌와 회의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 고민하고 깊이 생각했다. 결국 길을 찾았고 더 크게 성장했다. 퍼포먼스 마케터로 시작해, 브랜드와 콘텐츠,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마케팅 리더가 된 H가 말한다. 

“어느 날 문득 회의감이 몰려온다면, 마케터로서 나의 신념과 가치를 돌아보고, 열정을 다해 홍보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상품을 찾고, 직군에 가둬놓은 생각의 경계를 허물고 회사의 성장에 집중해보세요.” 

✍️오늘의 인사이트 정리

  • 누구나 진로 문제로 갈등합니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갈등이 생긴 원인을 탐색해보세요. 원인을 알아내면 해결책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 사람마다 일에서 활력을 얻는 요인이 다릅니다. 나의 성취감을 만드는 요소를 고려하여 산업과 직무를 선택하면 일에서 큰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요.
  • 회의와 고뇌를 느껴도 괜찮아요. 깊이 고민하는 시간은 큰 도약을 준비하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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