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 뭔 대표가 다섯이나 돼? – (1)
Prologue:
모두가 아는 사실과 조금은 다른 이유
“사실은 제가 다 관리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게 첫 번째 이유예요. 진행되는 사업의 종류는 많고, 그걸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고, 각 사업 본부마다 경쟁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혼자 모든 일을 담당해서는 경쟁사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자신감도 자존감도 많이 떨어진 시기에요. 그래서 회사를 나누고, 사업 본부장들을 대표로 만들고 사업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나눠줬어요. 그런데 이후 제 자존감은 더 떨어졌습니다.”
언론사 인터뷰에서는 계속되는 빠른 성장과 늘 도전하는 스타트업의 DNA를 지키기 위해 *CIC 체제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 내용이 사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지만 분명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도 있다. 혹시 회사가 나뉘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이강민 대표는 매우 인간적이고 솔직한 대답으로 말문을 열었다.
*CIC(Company-In-Company: 사내독립기업): 별도의 법인으로 설립하지는 않지만, 기존 회사 내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기업 형태의 조직
DAY1COMPANY라는 한 법인에는 각자 독립된 사업체로 기능하는 네 개의 CIC(Company-In-Company: 사내독립기업)가 있다. 직무 교육을 하는 패스트캠퍼스CIC, 외국어 교육에 집중하는 레모네이드CIC, 크리에이티브 콘텐츠로 국내외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콜로소CIC, 비전공자를 위한 전공 교육으로 취업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는 스노우볼CIC는 모두 DAY1COMPANY의 사업 부서로 시작하여 사내독립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의 독특한 구조가 생겨난 이유가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미처 예상치 못한 답변에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의식의 흐름대로 긴 시간 인터뷰를 이어갔다.
계속하기 위해 그만해야 했다.
“DAY1이 가진 각 비즈니스 모델마다 다른 원칙이 통용돼요. 그런데 제가 서로 다른 사업을 한 틀에 욱여넣고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있더라고요. 직무 교육 사업에서 얻은 경험적 지식을 외국어 교육 사업에 적용해서 잘 되리라는 법이 없는데 제가 그러고 있었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한 서비스 안에서 새로운 상품이나 콘텐츠가 추가되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면 일관된 의사 결정과 운영 방식으로 총책임자 1인이 사업을 이끄는 데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패스트캠퍼스(DAY1COMPANY의 옛 이름)가 운영하는 4개의 사업은 여느 회사와 다른 모습이었다. 교육이라는 하나의 큰 틀은 있을지라도 그 내용과 비즈니스 모델이 크게 달랐다.
운영 방식까지 다른 4개의 사업에 모두 신경 쓰는 것은 불가능했다. 경쟁사의 대표는 한가지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업만을 24시간 고민하며 7일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강민은 일주일에 길어야 이틀 동안 하나의 비즈니스에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었다. 스스로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DAY1에는 앞으로도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계속 추가될 것 같았다. 위기감은 밀려왔고 자신감은 떨어져만 갔다.
네 개의 비즈니스 중 한 분야에 집중해 경험을 쌓고 사업을 진두지휘할 리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2020년 여름의 일이다. 그리고 1년이 채 되지 않은 2021년 5월, 패스트캠퍼스는 데이원컴퍼니로 이름을 바꾸었고, 4개의 사내독립기업이 탄생했다. 5~6년 전 사회 초년생으로 패스트캠퍼스에 입사했던,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사업 본부장 4명이 각 CIC의 CEO가 되었다.
아이를 물가에 내놓았다.
각 CIC는 새로 태어난 스타트업과 같았다. 강민은 새롭게 리더가 된 네 명의 CIC 대표에게 아무것도 정해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냅다 회사를 쪼갰다. 일단 나누었고, 권한과 책임을 이양했고, 알아서 운영하라고 했다. 각 조직에서 발생한 문제도 CIC 대표를 필두로 조직 내에서 해결하라고 했다. 혼란은 예견된 일이었고 그야말로 난리가 났지만, 강민은 단호했다.
“A팀에 인원이 모자랍니다.”
“알아서 뽑으세요.”
“인프라도 프로덕트도 다 합쳐져 있는데 개발팀을 어떻게 쪼갭니까?”
“일단 나누세요”
“노동청은 회사를 하나로 보는데, 급여를 각 CIC에서 나눠서 보낼 수 없습니다.”
“그럼 그것만 빼고 다 쪼개면 됩니다.”
직원들은 매일 혼돈의 나날들을 보냈고, 경영진에 대한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간 이도 있었다. 구성원의 충격이 덜하도록, 새 조직을 미리 치밀하게 설계하고 정리해서 이양했다면 변화의 과정이 조금은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잘 준비해서 새 대표에게 넘겨주었다면 각 CIC에는 여전히 이강민의 리더십이 강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이는 그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강민은 새 리더들이 온전히 자립하길 바랐다.
다 주고 다 내려놓고 선을 그었다고 해서 후련함을 느낄 수도 없었다. 혼란 속에 힘들어하는 이들과 떠나가는 이들에겐 더없이 미안했고,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답답함과 무력감을 느꼈다.
“제가 권한을 줬으니까 새로운 리더들이 실수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깨닫고 발전하도록 지켜봐야 했어요. 그들이 저지를 실수가 예측된다고 해서 미리 안전망을 만들고 가이드를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조직 구성원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을 안겨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은,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여야 하지만 저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어요.”
몇달 후, 절벽에서 어미에게 떠밀린 사자들은 기어코 스스로 벽을 타고 올라왔다. 새내기 CEO들은 차츰 혼란을 수습하면서 자신만의 리더십을 쌓아갔다. 각 CIC에는 그들만의 조직 문화와 일하는 법도 생겨났다. 사업적으로도 매출을 쌓으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넓혀갔다. 강민의 바람대로, CIC 대표들은 리더가 된 후 실전에 부딪히면서 사업 본부장이던 시절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순리대로 잘 흘러가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찾아올 무렵, 강민의 자존감은 더 깊은 골을 파며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이제 내가 필요 없어졌네. 난 뭘 해야 하지?’
– 다음화(클릭🖱️)에 계속 –